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어도어 루스벨트 (문단 편집) === 인종차별 관련 === 한국에서는 제국주의로 인한 [[한일합병]] 문제 때문에 유별나게 인종차별적인 인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, 당시 기준에서는 되레 인종문제에서 진보적인 편에 속했다. 패권주의적 정책을 시행했으나, 그는 기본적으로 근대주의자로써 전근대적인 남부백인들의 ([[KKK]]로 대표되는) 흑인 핍박에 대해서는 미개한 전근대적 짓거리로 보고 경멸했으며, KKK를 탄압하기도 했다.[* 당시에는 루스벨트같은 좌파 정치인이 아닌 한, 미국의 대중적 여론은 KKK는 지금 같은 극악무도한 인종차별주의 집단보다는 남부의 전통을 수호하려는 과격 폭력집단 정도로 인식했고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. KKK단을 미화하는 영화 [[국가의 탄생]]이 유행할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.] 이러한 행보로 인해 현대 미국에서조차도 KKK를 옹호했던 [[우드로 윌슨]] 수준의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주류이다.[* 사실 윌슨은 [[서프러제트]]도 부정적으로 보아서 진보주의자가 아닌 성차별주의자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. 다만 그의 집권기에 미국에서 연방 단위의 여성참정권이 확정된 걸 보면 논쟁은 있는 부분이다.] 오히려 루스벨트는 당대 기준에서는 반인종주의적이라고 보일 만한 행보도 보였다. 예를 들어 당대 가장 영향력 있던 흑인지도자 [[부커 T. 워싱턴]]을 백악관에 초청하였는데, 이는 당시 흑인에 대한 인식을 고려하면 파격적 행보였고 이 부커 워싱턴은 '''최초로 백악관에 방문한 흑인'''으로 기록되었다. [[남북전쟁]] 직전 대통령을 지낸 [[프랭클린 피어스]]에 대한 그의 평가에서도[* "형편없는 실력에, 비천한 환경 속에 놓여서는 강자에게 침묵하고 약자에게 비열하게 굴었다. 노예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그 무엇을 요구하더라도 그들에게 맞출 수 있도록 일을 준비하였다."] 노예제를 혐오한 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. 종합적으로 봤을 때 루스벨트의 경우 특별히 인종차별주의자라기 보단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당대의 차별적 분위기에서 급진적인 의문을 품지 못한 것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. 비슷한 시기 다른 미국 대통령들조차도 그나마 진보적인 루스벨트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한 인종관을 가지지는 않았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는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